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Y 모씨(49세). 그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꼭 휴대용 휴지를 챙긴다.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훌쩍 거려야 하고 심할 땐 줄줄 흐르는 콧물로 하루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가 하루 소비하는 휴지 분량만 해도 서너통은 족하다. 줄줄 샌다고 할정도로 흐르는 코를 닦고 버렸는가 싶으면 또 휴지를 꺼내야 하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콧물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발작적인 재채기가 나면 그땐 사무실을 나가 한동안 있다가 들어 올 정도로 여간 고통스럽다.

전에는 이 약 저약 먹어보기도 하고 병원을 찾은 적도 있지만 그 때 뿐. 죽을 병은 아니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게 Y씨의 생각이다.

 

일종의 면역질환이다

Y씨가 앓고 있는 병은 이른바 ‘지긋지긋하다’고들 말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국내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얼추 전 인구의 10% 정도가 이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생활 환경이 변하고 대기오염 등 촉발 요인이 주변에 널려 있는 탓도 있지만 의학 기술의 발달로 알레르기 진단이 보다 쉬워졌으며 과거에 비해 인체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까닭이 아닌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한마디로 면역질환이다. 호흡을 하는 중에 콧속으로 흡입된 특정한 이물질(알레르겐)이 코 점막에서 일련의 면역학적인 반응을 일으켜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재채기가 연속으로 나오고 동시에 맑은 콧물이 흐르며 증상이 진행되면 급기야 코가 꽉 막히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문제는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은 단순히 비염에만 그치질 않는 점이다. 하나이비인후과 박재훈 원장은 “알레르기성 비염을 갖고 있는 환자들은 기관치 천식이나 아토피성 피부염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연세의대 이정권 교수(이비인후과)도 같은 견해다. 연령대 별로 알레르기 발병 부위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어릴 때 태열을 앓은 사람들은 후에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으로 진행되는 예가 많다고 말한다.

이정권 교수는 그러나 “이들 질환이 일생을 거쳐서 지속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체력이 왕성하고 면역력이 강한 청년기에는 사위였다가 30~40대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흔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알레르기 비염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코가 근질거리면서 재채기를 발작적으로 하는 것과 맑은 콧물, 코막힘을 3대 증상으로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자칫 감기 증상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은 금물이라고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이상학 교수(이비인후과)는 “감기는 알레르기성 비염에서 볼 수 없는 발열증상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재채기를 하지만 비교적 횟수가 적고 하루 종일 지속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정권 교수 역시 “감기는 맑은 콧물보다는 끈끈한 분비물이 나오며 시간이 경과할수록 누런 콧물로 변하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1주일 이내에 회복된다는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과는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은 처음 발동이 감기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감기증상을 보이다 콧물, 재채기를 동반하며 열 동반 없이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코막힘이 심한 것을 축농증으로 잘 못 아는 경우다. 코가 단단하게 막히면 마치 축농증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데 알레르기성 코막힘은 축농증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이정권 교수는 “축농증은 일단 누렇고 진한 코가 나오며 자고 일어나면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알레르기성 비염이 만성화되면 그 땐 코막힘이 주 증상이 되어 합병증으로 축농증, 물혹(비용종), 중이염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의들은 경고한다. 이땐 치료가 더 어려워 질 수 있으므로 조기치료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알레르기가 아니면서 증상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똑 같은 경우도 있다. 일종의 비점막 과민증이라는 것. 즉 코 점막이 체질적으로 민감하거나 코 구조가 애초부터 잘 못된 경우에 흔하다.

일반적인 알레르기성 비염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은 수천 가지에 달한다. 원인 물질이 어떠하냐에 따라 알레르기도 통상 계절성과 통년성으로 나뉘는데 계절성은 봄철에 흔하다.

즉 꽃가루가 기승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비염이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다. 반면 통년성은 연중 수시로 나타난다. 원인 물질은 사람의 비듬을 먹고 사는 집먼지 진드기가 최대 인자. 그외 고양이나 개의 털, 섬유류 등도 원인물질로 지적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의사의 문진(問診)을 통해서 거의 90% 이상 확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항체검사를 실시하고 항원을 확인하는 피부반응검사를 실시한다. 그것도 미덥지 않다면 현미경 아래에서 콧물 검사를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문진과 의학적인 검사 소견에서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확진되면 지체없이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아직까지 뾰쪽한 완치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루어서는 안된다는게 전문의들의 권고다. 방치하면 자칫 더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선 해야 할 것은 체력의 증강이다. 연세의대 이정권 교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면역질환이기 때문에 몸의 면역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회피요법. 즉 원인 물질이 되는 항원(알레르겐)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완전 회피는 여려운게 현실이다. 다만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울러 시도해 볼 수 있는게 면역요법. 전문의들 마다 견해차이는 있지만 장차 치료의 원칙은 면역 주사요법에서 찾아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 방법의 단점이 보완되지 않고 있다. 몇 년 간의 장기 치료가 요구되며 그 효과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권 교수는 항원에 대한 단백질의 구조가 밝혀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괄목할만한 연구결과가 곧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면역요법 이상 가는 치료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약물 요법도 빼 놓을 수 없다. 하루 한알 정도로 증상 완화를 가져다주는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스프레이제제가 기본이 된다.

비교적 효과가 좋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나 한가지 주의할 게 있다. 하나이비인후과 박재훈 교수는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점막 수축제는 약을 사용할 당시에는 코막힘이 탁월한 효과가 있으나 약물에 의한 반동으로 콧 속 점막이 다시 부어 더욱 코가 막히는 약물 중독성 비염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자가치료는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레이저요법 전문의별 견해차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적인 치료법이 시도되기도 한다. 예컨대 체질적으로 코의 구조가 잘못돼 있는 사람들이나 코 막힘이 심한 환자 등은 약물요법으로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게 비중격 수술.

이는 콧속 가운데 칸막이인 연골이 한쪽으로 휘어져 있는 관계로 콧속 공기의 흐름이 방해를 받아 코막힘 등의 증상이 더 심해지는 때에 할 수 있는 수술법이다.
 

레이저 요법도 최근에 관심을 끄는 수술법 중 하나. 그러나 이는 전문의별로 견해차가 있다. 연세의대 이정권 교수는 “자칫 잘못하면 코 속 점막의 표면을 상하게 해 후에 코의 기능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소견을 피력하고 있다.

반면 하나이비인후과 박재훈 원장은 “숙련된 전문의에 의해 시술된다면 예상되는 부작용보다 득(得)이 훨씬 많은게 이산화탄소 레이저요법”이라고 말한다.

어떻든 많은 치료법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법이 없다는 반증이다. 알레르기성 비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선은 이 질환에 노출이 안되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알레르기성 비염의 최대 인자인 집먼지 진드기는 가정내 청결만 유지하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다.
 

이에 덧보태 외부 이물질에 대응할 수 있는 면역력, 즉 체력을 키우는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을 때 가정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김을 코로 들이는 방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글 ㅣ 연세의대 이정권 교수(이비인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