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불황에는 사는 일이 쉽지 않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복잡한 현대인에게는 정신에 탈이 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데 불면증도 이런 증상 중의 하나다. 불면증은 우울증과 더불어 문명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노동으로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리 흔치 않은 병이었을 것이다. 몸이 고단하지 않으니 잠은 오지 않고 남들 다 잠든 고요한 시간에 혼자 깨어 있어야 하는 고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정신은 다음 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책을 읽어보거나, TV를 보거나, 자수를 하기도 하고 몸을 뒤척여 보기도 한다.

조용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족욕을 해보기도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미칠 것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보통 우리의 삶은 낮에는 기운이 주로 바깥에 있어 잠이 오지 않지만 밤에는 생기가 수렴을 하므로 잠을 자게 된다. 겨울에 기운을 간직하기 위하여 활동을 자제하였다가 때를 기다려 봄이 되면 기운을 펼치는 것과 같이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깰 때 기운이 살아나오게 된다.

밤에 잠을 잘 때도 기운은 안으로 수렴이 되어 있으나 숨을 쉬고 코를 고는 등 기운이 출입을 하여 활동은 하지만 낮에 활동하던 것처럼 바깥까지는 출입하지는 않기 때문에 기운이 활발하지는 않다. 이렇듯 기운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잠을 편히 자지 못하면 분명 이 기운의 흐름에 문제가 되고 결국은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이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들은 머리가 맑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운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조바심을 내고 초조증을 내서 습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시간에는 반드시 모든 것을 다 얻은 듯이 편안하게, 기운과 마음을 거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불만과 욕심으로 내 기운이 활동을 해서 자꾸 찌꺼기를 만들어낸다.

기운이 있는 사람은 기운을 순조롭게 돌려서 찌꺼기가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기운이 부족한 사람은 생겨난 찌꺼기들을 어리게 만든다.

그런 찌꺼기들이 머리로 올라가서 어리게 되면 머리가 맑지 않고 멍하게 된다. 꿈을 안 꾸는 사람들은 정신이 없으니 부리고 안 부리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정신을 부려야 하는데 그저 멍청하게 있어서 꿈도 없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도인들은 정신을 온전히 하여 망상에 흔들리지 않으니 꿈이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이런 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밤이 되면 생기가 수렴이 되어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눈에 기운이 덜 가니 활동이 덜되어 눈이 감기고 잠이 오는 것이다. 내 기운이 수렴이 될 때 우리 몸이 평안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평안하지 못 하다면 수렴이 되지 않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석곡 이규준선생은 불면은 양산재외(陽散在外)라고 했다. 불면은 활동하던 기운이 안으로 못 들어가든가 안 받아주던가 해서 양기가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꿈도 많아진다. 혹 담으로 기운이 막혀있던지 마음에 허열이 있다 해도 양기가 안으로 들어가 수렴이 되면 잠은 오게 되어 있다. 양기가 안으로 수렴만 잘 되면 잠이 잘 온다. 양이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하루 종일이라도 양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계속이라도 잘 수 있다.

큰 병을 앓거나 다치거나 해서 며칠씩 혼수상태에 있거나 잠을 자는 것은 다 양이 안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우리는 밤낮에 맞추어, 절기에 맞추어 일어나고 자야한다. 아침에서 밤이 되는 것이 눈에 안보이게 움직이고 활동을 하듯이 우리 생기도 거기에 맞게 활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불면은 양산재외 이므로 밖으로 나가 있는 기운을 안으로 수렴해야 한다.

사려로 인해 초조하고 음이 부족(陰不足-수기의 부족)한 상태이니 청윤(淸潤)하면서 중초(中焦- 비위의 기능 상태)를 소통시켜야 한다. 또 생기가 약하니 기운을 도와주면서 수렴하는 약도 조금 써야한다. 인삼이나 계지로 생기를 활동 시켜 주고 당귀 작약 같은 보음제를 써주고 맥문동 같은 수렴제를 넣으면 잠이 잘 오게 된다.

심기가 허약하고 답답한 경우에는 산조인이나 오미자를 넣으면 된다. 무조건 수렴시키면 안 되고 활동을 시킨 다음 수렴을 해야 한다. 잠이 잘 안 올 때에 술을 한잔씩 하면 잠이 잘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음평양비(몸이 편안하고 기운이 꽉 차 있는 상태)를 해주기 때문이다.

예전 처방들은 어쨌든 수렴을 시키려고 애를 썼다. 반하나 황련등을 써서 뜬 기운을 내려주려고 했지만 요즘 사람들처럼 생기가 약하여 활동이 안되는 데는 기운을 내리기만 해서는 불면증을 치료할 수가 없다.

노인이 되면 영양이 줄어들고 기운도 없어지는데, 60살이 넘도록 활동하던 버릇이 있어 자꾸 기운을 움직이게 된다. 그 버릇 때문에 영양과 가운이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꾸 기운을 밖으로 쓰기 때문에 불면이 된다. 요즘 불면증 환자들은 심폐맥이 거의 없다.

그만큼 기운이 없는 것이다. 기운이 없는데 그나마 안으로 수렴도 못하니 잠이 올 리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운은 없고 정신은 복잡하니 잠도 편히 못 자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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