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국 후 현재까지 5천년동안, 가장 어려웠던 기간을 사신 분들을 들라면 첫 번째로는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 병자호란(1637년) 기간을 사신 1590~1650년경에 생존하신 분, 그리고 두 번째로는 1900~1970년경 즉, 한일합방과 일제시대, 1·2차 세계대전, 한국동란 전후의 세계 최빈국을 거쳐서 생존하신 분들이라고들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상황들도 어려웠지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특히, 1900년생 어르신 분들의 연세가 1970년 때인 70세였을 때까지의 굶주림은 정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한다. 1980년 이후에 이 지긋지긋한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이 두 시대를 포함한 지난 5,00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가장 배고팠을 때는 요즘 3월부터 9월까지였다. 전년도 10월에 추수하였던 쌀은 이듬해인 3~4월이면 거의 다 떨어진다. 보리가 패기 시작하고 모심는 시기인 5~6월은 먹을 것이 없는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 맥령(麥嶺)] 이라고 불렀다.

보릿고개가 구조적으로 심화되어 연례화 되었던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하여 실시된 전 조선반도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탈취하였다. 고려, 조선 시대에 양반·상인사회를 구성해왔던 소작농의 토지 경작권마저 박탈하여 농촌의 계급구조를 지주와 소작농으로 양극화시켰다. 이때 일제강점기의 80%가 소작농이었는데 이 소작농이 지불하여야할 조세는 50%의 소작료 이외에도 땅세, 물세, 수리조합비, 수선비, 보수비, 접대비 등이었는데 모두 제하고 나면 전체 생산물의 25%정도 밖에 얻을 수 없었다.
이에 더하여 1920년대 산미 증식계획, 1930년대의 농업공황 그리고 모든 쌀을 일본으로 공출 하게 되니 소작농들은 평생 빚에 허덕여야 했다. 일례로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인 전라북도의 경우 전체 농민 중 최빈농민인 궁민(窮民)의 비율이 62%에 이르렀던 것이다.

해방과 6ㆍ25 전쟁 시에는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1965년경에는 미국의 원조로 조금 나아졌으나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춘궁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66년에 허문회 서울대 교수의 벼 품종개량이 시작되어 1972년부터 재배된 통일벼였다. 이후 통일벼 재배가 완전히 사라진 1992년경에 들어서서야 춘궁기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보릿고개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 즉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이었다. 소나무 껍질(송기), 칡뿌리, 솔잎, 전단토(田丹土) 그리고 흰 찰흙을 보리죽, 좁쌀죽에 섞어 먹기도 하였다.
필자도 1960년경 진흙에 사카린을 넣어 만든 진흙 떡을 먹어본 기억이 난다. 1970년경에는 정부가 강제적으로 보리 혼식을 시행하여 매일 점심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검사하였고 토요일 점심에는 분식을 장려하여, 라면, 국수, 짜장 등을 배식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199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이렇게 힘겹게 연명하여왔던 “보릿고개”가 작금의 쌀 재고량이 약 400만 톤을 상회하여 보관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러한 극적인 반전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다. 그래서인가 그 배고팠던 시절 자식세대에게만은 절대 이 배고픔을 대물림하지 않겠노라 질기게 버티며 살아오신 우리 선친들의 숭고한 정신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보릿고개”에 아련한 회상이 더해지는 것이다.